30대 10계명

05.19. 2014 – 서른이 되며 다음과 같은 다짐을 하였었다.

예수님은 만 30살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부처 역시 30살에 자기가 속했던 궁을 나와 진리를 깨닫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고 한다.

늘 30살이라는 나이에 큰 의미를 부여했었다. 20대라는 시기가 허락하는 무지, 미숙함, 시행착오, 일탈, 실수, 무책임성, 의존성, 유희와 쾌락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

아직은 모르니깐. 아직은 어리니깐. 아직은 괜찮으니깐. 으로 시작되는 변명들, 그리고 그 변명들이 아직은 용인되는 그런 시기.

하지만 30은 다르다. 저 위의 변명들로 내 부족함을 토로할 수 있는 자격이 순식간에 박탈되는 시기이다. 우리가 따르는 대부분의 현인들의 삶에서도 나타나듯 30대는 단순히 세월의 흐름이 부여한 한 숫자가 아닌, 자아에 대한 의도적인 탈바꿈이 요구되는 시기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내가 그래도 지난 30년간 살아오며 중요하다고 생각한 메세지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정의하는 10개의 키워드가 뭘까. 나는 무엇을 의미있다고 생각하며 무엇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가.

물론 현명하고 지혜로우신 (연륜이 높건 낮건) 많은분들이 보았을때 저 10개의 키워드의 cliche 혹은 그 성찰의 가벼움에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한정적인 내 경험과 지식의 경계선을 인지하기에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decade 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decade 를 맞이하며 몇 글자를 적어본다. 내가 40살 즈음 이 리스트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1. Carpe Diem

– 공자는,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였다. 단순한 승패의 논리를 떠나, 그는 가장 즐길 줄 아는 이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같이 열심히 노력해 사는 민족은 드물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불행하다. 수재가 칭송받고,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성취에 박수를 보내지만 행복이 결여되어있다.

한국서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즈음,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았다. “Oh Captain my Captain” 을 외치며 책상위로 올라가는 학생들을 보며 전율을 느꼈고 수재들이 모여 “성공적”인 길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에게 Mr. Kitting 은 정작 carpe diem 이라는 하나의 가르침을 전수한다.

이 순간을 잡아라. 지금을 너 것으로 만들어라.

즐길줄 아는 이가 가장 성공한 것이고 이것이 가장 위대한 메세지다. 나를 미국으로 이끈 계기다.

2. Coram Deo

– 하지만 즐긴다는 것은 무얼까. Carpe Diem이 정직하고 옳은 길을 외면하고 순간순간의 유희와 쾌락을 추구하는 구호가 되어버린다면 그 참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적절한 순간에 Coram Deo에 대해 알게 되었다. “주님의 임재앞에” 라는 라틴어이다. “신”과 “선” 그리고 “진리”에 대한 호기심과 성찰이다. 진정한 즐김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언제 어디에선가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실존적 질문들이 중요하였다. 진정한 선 (goodness), 조물주, 진리, 아름다움. 분명 신이 존재한다면 진리가 있겠고 진리는 선과 아름다움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라는 믿음과 동경.

기독교에 있을까. 물론 그 안에서 저 위의 것들을 많이 발견하고 체험하였지만 인간이 만든 한 종교보다 저 위의 것들은 훨씬 크다. 한 종교를 통해 저런 것들을 도달해야하는데 우리는 한 종교 안에 저런 것들을 속박한다. 이 점을 주의하는 중이다.

신과 선, 진리와 아름다움. 이것들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 존재의 가치는 무의미해진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고로 이 문제는 평생 짊어질 짐이자 동시에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3. Identity Crisis

– 내가 시카고로 가기 위해 물어야 할 질문은, 시카고로 어떻게 가야합니까가 아니고 내가 어디있는가 이다. 진리의 길을 가기 위해선 진리가 어디있는지 묻는 것이 아니고 나의 위치를 물을 필요가 있다. 내가 뉴욕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카고로 가는 길이 자연스럽게 제시되듯이 내가 누군가인지 알게 될 때 내가 나아가야할 진리의 길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모든 위인과 현인들은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있었던 것 같다. 예수가 그랬고 부처가 그랬고 간디와 마틴루터 목사가 그랬다. 모든 위대한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그랬다. 내 정체성에 대한 첫 고민은 미국을 가며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처음 시작된 듯 하다. 난 한국인이었는데 이제는 미국인이 되길 결정을 하였고, 그렇다면 나는 이 새로운 사회에서 어떻게 정의되고 있고 또 나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란 무엇인가.

Korean American 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발견, 자기개발. 하지만 그 다음은 American 으로, 세계인으로, 인간으로, 영적 존재로, 직업인으로 등등 그 범주는 단순히 문화적이 아닌, 영적, 인본적, 범국가사회적으로 넓어진다. 필연적으로 내가 남들과 살아가는 한 나는 수시로 사회에 속해 있는 나의 역할과 존재의 이유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고 개발할 수록 우리는 남들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시작은 혼동이지만, 그 끝은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의 방향성에 대한 확립이다.

4. Passion

– 학부 때 내가 따랐던 영화 교수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영화가 아닌 열정이다. 열정은 한 분야나 소질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열정이란 그 존재 자체를 깨닫는 것이다.

심장 박동수의 증가와 체내 혈액이 뜨거워지는 바로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에너지와 긍정이 온 몸을 감싸고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내 몸 전체를 내어던질 수 있는 용기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오는 그 때. 열정은 내 20대 초중반 대부분을 정의하였다. 영화와 스토리텔링으로, 사회정의와 인권운동으로. 로스쿨을 가며 그 열정의 의미를 잠시 잊고살았지만 최근 그 열정이 다시 꿈틀거린다. 열정이야말로 위 carpe diem 을 실현시키는 도구이다.

5. Play

–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페북 등 소셜미디어를 사용한 내 이미지 관리(?)를 정말 잘한다고 주변에서 그런다. 내 가장 친한 친구말에 의하면 페북에 올리는 내 글들이 “가증”스러워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한다. ㅎㅎ 그만큼 내 20대는 신명나고 후회없는 “유희”가 가득했다.

“놂”도 중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중도의 기준을 거의 매번 부정하였다. 실제는 쾌락인데, 이 것을 유희라고 말하는 것 자체도 가증이고 위선일 수 있겠다.

아마 10개 키워드 중 가장 세속적인 키워드일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배제시킬 수 없는 이유는, 이 것 역시 다 한 “때” 가 아닐까 해서이다. 또 막(?) 놀아봤기 때문에 그것의 덧없음과 허영을 알고 더 우아한 “유희”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변명도 대어본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굴뚝을 치고 올라가는데, 도덕적/종교적 무조건적인 절제에 대한 강요가 과연 우리를 더 선하고 영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놀고싶다면 놀아봐야된다고 생각한다.’

6. Darkness

– 평탄하던 내 삶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나서 약 1년여간 나름대로의 어두움이 있었다. 사회정의 실현과 인권 보호를 외치며 로스쿨에 진학했지만 졸업때 즈음 여느 학우들같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anxiety 등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사회란 그냥 입성하는 것이 아니구나. 경제적 가치창출이란 맥락에서, 사회에 공헌할 능력 면에서, 나는 별로 값어치가 없는 존재구나. 어두움과 싸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었다. 내 의지나 열정에 상관없이 나를 원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 내가 가치있게 사용될 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이 참 힘들었었다. 물론 뉴욕같이 최고들만 모인 곳에서 무모한 도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환란 (suffering) 은 인내 (patience) 를, 인내는 연단 (character) 을, 연단을 희망을 낳는다”는 성경구절이 힘이 되었었다. 겸손이란 미덕을 배웠다기는 좀 그렇고, 바로 저 때 가장 철학적 실존적 질문들을 던졌던 것 같다. 두려움과 anxiety 를 밤마다 곱씹으며 껌껌한 방에서 “그래도 내일은 희망이 오겠지” 라는 긍정의 인내로 눈을 붙였었다. 모든 불행과 아픔과 고난에 희망이 결여되어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잃는다. 절망적이어도, 우리는 무조건, 반드시, 늘, 곧 희망의 등불이 나타날 것이란 믿음을 유지해야한다.

암흑의 시간이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나보니 참 소중하다. 가장 감사한 시기이다. 30살 인생에 저것이 가장 힘들었던 경험이라고 회상하는 것을 보니 참 복받은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저 암흑이 있었기에 가장 깊은 고뇌를 하였고 가장 깊이 성숙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 때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지금은 버릴 것이 없다. 내공이라는 선물을 살며시 내려두고 암흑이 지나가버렸다.

7. Family

– 30살 생일을 하루 앞두고 부모님과 저녁을 먹는데 아빠가 엄마께 묻는다. “아들 서른이 되는데 먼저 30년 더 산 사람 입장에서 조언 하나 해주지?” 엄마가 답한다. “지금처럼 재미있게 원하는대로 살아라”

난 조금은 기이할 정도로 현 한국 시대상에 맞지 않는 부모님을 가졌다. 영화를 한다고 할 때는 멋진 영화작품을 기대하셨고, 로스쿨에 간다고 할 때는 멋진 변호사를 기대하신다. 사업을 한다고 하면 멋진 사업가를, 여행을 간다고 하면 멋진 여행기를 기대하신다. 기대를 기도로 하신다.

그들을 보며 나 역시 내가 미래 내 자신들과 후배, 멘티들에게 해줄 교육방법을 전수받는다. 강요대신 선례로, 현실보다는 이상을 쫓을 수 있게 가르치신다. 최대한 자유를 제공해주시고, 전적으로 믿어주시며, 순간적인 것 보다는 영원한 가치들을 위한 삶을 살길 기도해주신다. 나와 동생 의석은 최고의 축복을 받은 두 아들들이다.

8. Travel

– 지금 현재 나의 가치와 캐릭터 형성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여러번의 여행을 통해서이다.

5대양 30여개 나라를 다녔다. 봉사활동, 여행, 인턴십 등 밖으로 나갈 기회를 늘 찾아다녔고 성사가 되었을 땐 그냥 떠나버렸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여행의 시작은 물리적인 목적지의 상상이지만, 여행의 완성은 중간중간 만나는 이방인들과 그들과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생도 같지 않나. 하나의 목표를 정해놓고 나아가지만 결국 인생을 정의하는 것은 순간순간 과정의 오랜시간 쌓임이다. 즉,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도 중요하겠지만, 여정 (journey)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마주할 때면, 그 때 까지 나를 형성하던 모든 것 – 가치관, 문화, 성격, 민족성, 편견 – 이 송두리째 무의미해진다. 내가 익숙하던 모든 것들과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의 “차이”를 인지한다는 것. 한 발 더 나아가 그 차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 여행을 많이 할 수록 해탈할 수 밖에 없고, 우주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고로 나그네는 하나의 독단적인 사상이나 가치관에 얽매여있지 않다. 그 보다 더 위대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여행으로부터 선물받는다.

9. Humanism

– 대학교 때 교내 북한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며, 뜨거운 눈물을 여러번 맛 보았다. 그 중, 탈북자 신동혁씨의 간증을 바로 앞에서 들었을 때 –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다는 그의 고백에 – 큰 충격을 받았었다. 사회 정의를 외치지 않곤 우리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노예일 것이다.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의롭지 못 한 모습에 분노할 수 있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이다. 99명의 수재보다, 단 하나의 옳바른 마음을 가진 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로스쿨을 가기 몇 달 전에 중국과 유럽을 여행하며 너무나 멋진 시간을 보냈었는데, 시라큐스의 추운 도시에서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한 학기 동안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여느때와 같이 도서관에서 밤 늦게 잠시 밖으로 나와 높이 쌓인 눈과 찬 바람속 사이에서 푸념을 늘어놓았었다. 왜 사서 이런 고생이지? 바로 몇 달 전에는 스페인 해변가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말야. 그 때 이런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편하게 즐겼던 세상의 아름다움과 모험을, 내가 아닌 다른 이들도 마음껏 경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기 위해 내가 여기있다고.

늘 인권변호사가 된다고 말을 했었고 국제기구에 들어가는 것이 오랫동안의 일종의 “목표”였었다. 지금은 지재권과 사업에 눈을뜨기는 했지만 늘 좋은 일, 남에게 도움되는 일, 선한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사회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 메마른다면 그 삶은 참으로 불행한 삶일 것이다.

10. Business

– 지난 1년 6개월간 뉴욕에서 처음으로 눈 뜬 키워드이다. 가장 최근에 발견한 것이기에 현재 진행형이며 또 그 광범위한 넓이를 배우느라 아직은 말을 아끼게된다.

그 전에는 “공익 (public good) 대 사익 (private good) “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였었다. 물질적인 가치를 최우선적인 사기업은 나쁜 것이며 공의를 우선으로하는 기타 비영리 단체나 국제기구들이 위대하다는 논리다. 이런 편견이 틀렸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신속한 수단이 “자본”을 통해서이며, 그 “자본” 역시 공정하고 공평한 절차가 수반될 때, 사회를 위해 위대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자본으로 옳바른 가치를 창출하고 사람에게 열정과 목표의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즈니스는, 경영은, 마법적이기까지 하다. 너무 늦게 알아버렸지만 나는 인본적 foundation 을 먼저 쌓고 비즈니스에 눈을 뜨게 되었음이, 그 순서가, 감사하다.

10년 뒤 40대에는 위에서 어떤 것들이 교체되고 어떤 새로운 것들이 추가 될까. 사랑, 가정, 희생 등의 키워드가 등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30대를 시작하며 공항에서 마지막 글자들을 끄적여본다. 더 멋진 30대를 보내길 자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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